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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영원성
글쓴이 관리자  2006-08-28 01:37:42, 조회 : 1,537

[글:송재국]

구원의 영원성

여행을 하면서 선진국에서 특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주소만 가지고도 가고 싶은 곳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경우 번지를 정리하고 있지만 아직도 1번지 다음에 당연히 2번지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게 정리가 된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저가 살고 있는 동내는 9동인데 3동과 4동 사이에 끼어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일지라도 그나마 주소가 없다면 아예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가면서도 이정표(sign)를 보면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갑니다. 아마도 고속도로의 이정표를 무시하고 생각나는 대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는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혹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 때는 큰 낭패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길은 정확한 이정표나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가듯이 하나님의 이정표요 길을 제시하는 주소를 확인하면서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하면서도, 그리고 영원한 길을 사모함으로 교회를 찾았으면서도 구원의 길을 가지 못하고 생명의 길로부터 이탈하여 오히려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례들이 허다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증거하기를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는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마7:17-19). 이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시고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을 규명하기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7:22)라고 하는 자들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 날”은 최후의 심판날입니다. 다시 기회가 없는 날입니다. 그 때 “주여 주여”하는 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주여 주여”하고 외치면서 주님께 매달립니다. 그들은 선지자 노릇했던 목회자들이며, 귀신을 쫓아냈던 신비스러운 능력을 행했던 자들이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자부심을 갖는 자들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와 세상에서 수많은 공헌을 쌓은 분들입니다. 오늘날 이기적인 시대에 오직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헌신하고 변함없이 덕을 쌓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최후의 심판주되신 우리 주님의 최후의 판결을 들어 보십시오! 주님은 선고하시기를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고 하십니다. 그들은 “주여 주여”라고 외치면서 매달렸지만 주님은 그들을 알지 못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주님께 속한 양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십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롬8:29,30).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요10:14)라고 하시므로 주님은 그의 양들을 다 알고 계실뿐더러 양들 또한 목자되신 주님을 바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심판이신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불법은 죄를 의미합니다(요일3:4).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헌신, 선함, 봉사, 선교 등이 모두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착각을 범하면서도 영원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범하는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이 아닌 불법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최후로 그들을 향하여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떠난다면 그들의 길은 지옥 외에 없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심판과 저주의 불못으로 떨어졌습니다. 지옥이 그들의 영원한 거처입니다. 이런 선고를 받은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던 목회자들이요.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던 신비스러운 일을 행하던 자들이며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일들을 행했던 자들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명함에는 빽빽하게 그들의 직분과 사역이 망라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명함에 40일 금식, 혹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는 자, 혹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 등의 관록들이 소개되어 있는 오늘날 그들이 어떤 자들인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구원의 길을 바로 알고 가지 못한 자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라고 바른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서신서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고 하므로 오직 성경 안에서만 참된 구원의 길 곧 영생의 길이 있음을 한결 같이 증거한 것입니다.
혹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사하면 “말씀 말씀”하지 말라고까지 외면합니다. 이단들이 성경을 가지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단들의 소유물이나 증거물이 아닌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 안에서만 참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류 최대의 유산으로 성경을 주신 목적이요 이유입니다.
더구나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까지도 때대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성실하게 구원을 지켜야만 지속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보존되는 것으로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약성경이든 신약성경이든 한 번 얻은 구원은 영원하다는 것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구약성경의 모형에 의하여

단번 속죄에 대하여 구약성경은 중요한 모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40년 동안의 광야 여정 가운데는 물이 없어 불평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던 사건이 두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 사건이 일어난 곳을 모두 “므리바”라고 부르기 때문에 두 사건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가 되기도 했던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얼마나 들어가고 싶었겠습니까? 꿈이 그리던 가나안 땅, 그 땅을 멀리 바라보면서 그 백성들을 이끌고 40면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증명된 풍성한 땅이었습니다. 그 땅을 그리워하며 40년 동안이나 그 백성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오직 들어가기를 원했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로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멀리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가고 싶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때 상황을 증거하기를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였사오니 천지간에 무슨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3:23-26)고 하셨습니다. “그 만 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참으로 엄숙한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불평하고 원망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지팡이로 호렙산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출17:6).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쳤을 때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백성들은 그 생수를 마시고 생명을 구했습니다.
다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에 머물 때였습니다. 백성들은 또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로 끌고 나와 죽게 하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더러는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당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모세가 이런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고 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듭된 불신과 원망으로 아마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므로 물을 나오게 하였습니다(민20:7-13). 그러나 이것은 결정적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었고 하나님의 경륜을 오해하는 계기가 되어 그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실 반석을 한 번치거나 혹 두 번 치거나 아니면 명령을 하거나 물만 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생명의 문제로서 반석을 두 번 치는 것은 모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가 되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두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반석이신 주님은 한 번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의 지상사역을 다 이루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고전10:4). 주님은 두 번 죽으실 수 없으십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7,28)고 하신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이 사람에게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단 한 번 밖에 죽으실 수 없으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00여 년 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세상 죄에 대한 단번의 죽으심이었습니다. 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사함을 깨닫지 못한 체 회개의 기도를 하는 것은 마치 구약성경에서 죄사함을 위한 속죄 제사를 반복해서 드린 것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약제사는 반복적인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죄를 범할 때마다 희생제사가 필요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장의 권속과 백성들의 죄를 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매년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를 없게 하시려고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히10:12). 그러므로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원리에 의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하기를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속죄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구약성경의 제사와 같이 죄를 범할 때마다 회개의기도로서 죄사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반복적으로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구약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제사가 죄를 없게 하는 제사였다면 제사 드리는 것을 중단했을 것입니다(히10:2). 그러나 구약의 드려졌던 반복된 제사는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자신을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기 위하여 세상 끝에 곧 시대의 완성에, 율법시대의 끝에 나타나셔서 죄사함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원리에 의하여 죄사함은 완성되었으며 죄를 없게 하는 제사가 드려지므로 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세상 죄에 대한 대가가 지불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는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진 것이며 단번에 성취된 것입니다(히9:12).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하기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고 하셨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온전케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확신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말씀에 의하여(요10:28,29)

주 예수님은 그 말씀으로 구원이 영원한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영생은 길이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은 아무도 멸망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멸망하실 수 있으시다면 영생 얻은 자들도 멸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유보다 더 크시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그 능력이 한이 없으시며 이루지 못할 장애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증거하기를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고 하셨으며,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23:29)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라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영구성과 그 능력을 증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5)고 하므로 복음의 영구성에 대해서도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듣고 믿은 복음은 영구합니다. 그 복음은 영원토록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은바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롬8:31-39)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우리의 구원이 영원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의 영원성을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하심에 의하여 불변함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맞섰을 때 능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야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내려와 사마리아에 도착했을 때 이세벨이 24시간 내에 죽이겠다고 위협했을 때 그 목숨을 위하여 광야로 하루 종일 도망하였고 그 후에도 그의 종을 머물게 한 후 또 다시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물리친 것은 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약5:17)라고 하므로 그의 능력이 우리와 같다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능력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엘리야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구원이 영원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33)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33b,34a)고 하였습니다. 의롭다함과 정죄는 대칭어입니다. 의롭다함은 무죄보다도 더 적극적인 말입니다. 이 말은 거룩함과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능력과 선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5). 하나님의 손에서 아무도 그의 택하신 자들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37).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8,39).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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